나의 등산이야기

[일상/등산] 구미 금오산

오늘의똘 2022. 12. 3. 16:30

한라산을 다녀오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냥 단순한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라산 정상에 오르며
느꼈던 기분들이 당시 나에겐 참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다녀오자마자 냉장고에 붙여놓은 한라산 등정인증서를 보며
앞으로도 등산을 좀 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좋은 등산화는 가격이 만만치 않아, 일단 집에 있는 엄마의 오래된 등산화를 신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신발까지 구비하고, 구미에 있는 금오산을 등산하기로 마음먹었다.


10월의 첫 주는 아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춥지는 않아
아침 공기가 맑게만 느껴졌고 옷차림도 크게 두껍지 않아서 한껏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금오산은 구미 톨게이트에서도 매우 가까운데다 도립공원인데도 아주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아침일찍 도착한 금오산 주차장은 자리가 넉넉했다.
1주차장은 50대 미만의 차만 주차가 가능하기에 하산 후 붐비지 않게 움직이고자 마음 편히 2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이른 시간이라 주차 요원도 없었다. * 주차요금은 1500원이다.


입구부터 한 10여분 정도 오르면 산성문이 나온다.
조금 더 가다보면 폭포로 가는 길과 오른쪽에 도선굴로 가는 길이 나온다. 워낙에 대구 경북지역에서 사랑받는 산이라고 해서 그런지
토요일 아침부터 사람이 꽤나 많았고, 특히나 젊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도선굴로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아서 내가 오를 때엔 도선굴로 향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도선굴의 거의 입구 즈음엔 정말 낭떠러지 옆으로 암릉을 올라야 하는데 그 코스가 길지는 않고 안전하게 펜스가 있어서
천천히 오른다면 크게 어렵지는 않다.  도선굴은 굴에서 바라보는 구미의 모습이 아름다운데다, 그 굴이 자연굴이라서 인기가 많다.
인스타그램에서 금오산을 찾으면 도선굴에서 바라보는 일출 사진이 꽤나 많음을 알 수 있다.


도선굴에서 나와 보면 옆으로 대혜폭포 보인다. 내가 갔을 때는 물이 많지 않아 폭포의 멋진 물줄기는 보지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너무 멋있었다. 폭포 앞으로는 넓고 평평한 암석이 있어, 꽤나 많은 사람들이 간식을 먹으며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한 여름엔 더위를 식히러 오는 이들이 꽤나 많을 것 같았다.

대혜폭포를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을 접어들면 바로 헐떡고개의 시작이다.
헐떡고개는 데크로 된 계단이 한참이나 이어지는데, 그 계단이 많아 등산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꽤나 힘들 것 같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탓이기도 하고, 데크로 이어진 계단은 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름이 헐떡고개라 하여 꽤나 긴장했는데, 걱정할 것 없었다.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계단으로 워낙에 길이 잘 닦여있어
헐떡고개까지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도 꽤나 많았다. 헐떡 고개에 오르면 구미 시내가 꽤나 잘 보인다.
아직 정상은 아니지만 맑은 날이라면 아래로 보이는 구미 시내가 예뻐 한참을 쳐다보게 된다.


헐떡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정상으로 가는 길을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흙과 돌로 이루어진 길이다.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시작됐다. 한참 정신이 팔려 오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아가씨 나중에 신발 꼭 바꿔요. 그 신발 내려앉으면 위험해요”라고 하시길래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하고 신발을 보니 왼쪽 신발 뒷축이 이상했다. 아웃솔 사이사이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사이사이 터지는 조망에 신발 걱정보단 카메라를 잡고 연신 사진을 찍어댔던 것 같다.


에이 설마 무슨일 있겠어? 라며 가던 길을 계속 했고 눈앞에는 정상으로 가는 길과 오형돌탑을 가리키는 표지판 앞에 섰다.
미리 유튜브를 통해 보았던 그 표지판이었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다시 가느니, 너덜길이 조금 힘들어도 오형돌탑으로 해서
올라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 길이 조금 가파르긴 했지만 오형돌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5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왼쪽 신발 밑창이 뚝 하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급히 가방에서 어디 신발을 묶을만한 끈이라도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겨우 찾아낸 것은 충전기 케이블이었다.
겨우 밑창을 신발에 꽁꽁 묶었으나 케이블이 워낙에 뻣뻣해 채 열발자국도 떼기 전에 풀리기 일쑤였다.
겨우겨우 오형돌탑에 도착할 때 즈음엔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마저 아웃솔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하는게 보였다.


신발이 여의치 않으니 걱정이 앞서 눈앞에 펼쳐진 멋진 돌탑과 경치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던 것 같은데.. 

와중에 사진을 열심히 찍었나보다ㅋㅋ

 

돌탑에서 보는 경치는 정상에서의 경치 못지 않게 멋있었다. (나중에 다시 도전하고 깨달았다.)

신발이 문제이니 아무리 정상이 얼마남지 않았어도 안전상 내려가는 게 맞았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겨우 겨우 신발을 끌며 내려오자마자 신발을 갈아신고

등산화부터 냅다 갖다버렸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참 어이없었다.

 

너무 화가났지만 안전하게 하산함에 감사해야할 정도였다. 

그날은 정상을 정말 눈앞에 두고 내려오다니, 너무 아쉽고 화가 났지만 자고 일어나니 참 웃음이 났다.

인생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다 그렇지 않을까?

월드컵 경기를 치르고 있는 선수들도 그렇고 그렇게 공들여 온 순간이 와도

직전에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좌절되기도 한다.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더 큰 산이 아니었음에 안도해야 하는 날이었다.

또 하나 배운 그런 날이었다.

 

+) 신발은 망가졌지만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 다람쥐도 만나고, 주차장에서 본 금오산의 모습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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